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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화음악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원래도 자주 듣긴 했지만, 요새는 정말 무비 스코어만 주구장창 듣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존 머피의 The Surface Of The Sun도 계속 반복 플레이하게 됐고…… 결국 대니 보일 감독의 ‘선샤인’(2007)을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 대니 보일 감독 + 킬리언 머피 주연 + SF영화 ]라는 조합 덕분에 아주 좋아하는 영화였는데, 그러다가 ‘어벤져스’(2012)를 보고난 뒤로는 ‘선샤인’의 메이스 역이 크리스 에반스였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메이스는 아주 중요한 캐릭터이지요. 대니 보일 감독의 오디오 코멘터리에 의하면 캐파(킬리언 머피)와 메이스(크리스 에반스)는 아주 중요한 관계에 있습니다. 서로를 무척 싫어하지만, 그만큼 인정하고 있고 종국에 캐파가 그토록 힘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메이스 되겠습니다. 대니 보일 “이 장면은 상당히 동성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묘한 관계죠. 서로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캐파가 힘을 얻죠.”



“태양의 표면에 떨어졌지? 눈만 감으면 늘 그 꿈을 꿔.”
선샤인 (SUNSHINE, 2007)

감독 : 대니 보일 (트레인스포팅, 28일 후..., 슬럼독 밀리어네어, 127시간)
장르 : SF액션 스릴러, 태양에 관한 SF, 생존탈락형 재난영화

태양이 죽어가는 상황. 지구는 꽁꽁 얼었고, 따라서 인류는 멸망해가고 있습니다.
7년 전, 이 태양에 핵탄두를 떨어뜨려 불씨를 붙여보려고 출발했던 이카루스 1호는 연락두절로 실종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이카루스 2호가 16개월간의 지루한 우주여행 끝에 수성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역에 들어선 참입니다.


구석의 작고 검은 동그라미로 보이는 수성으로 태양의 압도적인 크기와 밝기를 대사 한 마디 없이 묘사하지요. (영화 초반부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도 투과율을 2%로 조절해서야 바라볼 수 있는 것.)

이때까지의 우주여행이 지루했던 것은 이카루스 2호의 A.I.인 이카루스의 유능함 덕분이기도 합니다. (스페셜피처의 삭제장면 참조.) (참고로 감독은 이카루스 성우―치포 ―도 꾸준히 촬영장에 불러 대사호흡을 맞추게 했습니다. 제작비는 더 들어도 이렇게 했을 때의 진실한 연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태양은 등장인물들 최대의 구원이자 적입니다. 태양과 “아주” 가까워짐에 따라 사람에게는 모종의 변화가 생기지요. 클리프 커티스(서릴 박사 역)가 말했습니다. “태양은 신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이 말을 키워드로 삼고 보시면 중후반부의 난해함이 많이 해소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모종의 변화들과는 또 달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확신”이나 “임무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압박감”, “그리운 부인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 “핵분열 시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싶다”는 등의 여러 가지 마음이 거대한 이카루스 2호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니 보일 감독 왈,
“SF 영화의 전형적인 장면입니다. 일반적으로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죠. 우주선, 대원들 그리고 신호음이요.
모든 상황을 좌우하는 신호음이요. 신호음을 바탕으로 모든 결정이 내려지거든요.”
에 따라
7년 전에 실종됐었던 이카루스 1호의 신호음을 포착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 신호음은 실제로 아이오와 주립 대학이 가지고 있는 음향 자료를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주로 소리를 쏘아 올려서 되돌아온 소리.)

이카루스 1호를 수색하러 갈 것인가. 아니면 핵탄두 발사라는 임무에 집중할 것인가.
“투표로 결정해요.”
“안 돼. 우린 정치인이 아냐. 우주비행사와 과학자들일 뿐이지.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결정해야 돼.”
결정권은 핵탄두를 담당하는 물리학자인 캐파(킬리언 머피)에게 맡겨졌고, 결국 사람들은 (과학의 최고결정 핵탄두를 두 개 확보하여 작전의 성공률을 높이자는)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이카루스 1호와 도킹하러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각종 우주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우주배경 재난영화의 시작입니다.
이런 장르가 그렇듯 굉장히 슬픈 내용이에요. 한 장면, 한 장면이 서글프고 묵직해서 깊이 몰입하게 해줍니다.
다만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가 존재하고 엔딩도 그러합니다. 감독이 잿더미속의 새싹을 표현한 것에 대해 폭스 관계자는 아주 놀라워했다고 하네요.

할리우드 SF영화치고 많은 예산을 들인 영화는 아니었다고 하는데요(2000만 파운드~2600만 파운드 추정), 세심하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비주얼 괜찮고, 철학도 있고, 다들 무언가 있는 캐릭터 역할 분담도 좋고… 참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리타이어하는 캐릭터도 없고, 미션의 막중함과 태양의 신비를 묘사하는 장면들도 인상 깊고, 방열판이 중요한 우주선의 디자인도 흥미롭고… 전반적으로 참 잘 만들어진 SF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광신도 난입 스릴러, 난해한 미스터리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 같기는 합니다만. “태양에 가까이 가면 물질과 정신에 어떠한 영향이 미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라는 것이 이 영화의 소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면 나름대로 즐거운 감상이 되실 것 같습니다.

기타, 영화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메모.
― 트레이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핀베커가 훔친 칼로 죽인 뒤에 자살로 보이도록 위장한 것. (참고로 트레이는 영재소년 출신 설정.) (덧붙여, 멤버의 동양인 비율이 높은 것은 세계 각국의 우주산업 투자 상황을 나름 고려해서 설정한 것.)
― 핀베커는 아주 가까운 태양열에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몸에서 이상한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음.
― 영화 후반부의 그 장면은 핵탄두가 너무 거대해서 폭탄 여섯 면에 다 중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

오른쪽 블루레이는 한국정발 블루레이가 오랜 기간 품절 상태라 일본판으로 구입한 것인데……… 이걸 사고 나니까 국내정발판이 재출시되었지 뭐예요. 크. (일본판이라 캡틴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가 표지 맨 앞에 나와 있어요.)

그러면 크리스 에반스 이야기를 조금 하고 끝내도록 할게요.
크리스 에반스는 영화 초반부터 킬리언 머피와 크게 부딪히는 캐릭터인 메이스 역을 맡았습니다.
군인출신 엔지니어로 무엇보다 핵탄두 발사라는 임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물. (감정적으로 욱하는 장면이 두 군데쯤 있기는 하지만)
한 명의 목숨보다 전 인류의 목숨을 중히 여깁니다, 가차 없을 정도로요. 이것은 자기 목숨보다 전 인류의 목숨을 중히 여긴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크리스 에반스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헤어스타일이 두 종류 나오고, 캐릭터가 굉장히 고생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영하 273도의 우주공간에 우주복도 없이 날아간다든가 냉각수에 온몸을 담그고 기기를 조작한다든가……. 특히 냉각수 장면은 실제로 추운 데서 춥게 촬영했다고 합니다. 입김이 CG가 아니며, 이를 딱딱 부딪치는 것이 연기가 아닙니다. 크리스 에반스 “최악이었어요, 촬영 장소에 가서 보니 꽤나 황당하던데요. 우후, 내가 여길 들어가야 하다니… 춥기도 엄청 추울 텐데.” “해야죠, 용기를 내서 부딪치는 수밖에 없어요.”
또한 ‘판타스틱 4’ 개봉 이전에 오디션으로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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