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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개봉 기념으로 옛날에 썼던 글을 위로 끌어올려봅니다.
원래 2013년 4월 2일에 포스팅했던 글이며, 아래로 가필 수정한 내용은 없습니다.



작년 봄에 책 잘 안 읽힐 때 읽자고 사놓고는 완전히 잊어버렸던 학산 Extreme Novel의 라이트 노벨. 라이트 노벨은 몇 시간이면 뗄 수 있으니, 책 한 권 잘 읽었다며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두꺼운 책 여러 권 읽은 요즈음에 쇠뿔 빼는 김으로 읽어버렸다는 게… 어어?


단권 완결.

기동 재킷이라는 파워 슈트를 입고 외계에서 온 괴물 기타이와 처절하게 싸우는 SF 액션물로, 전개도 결말도 아주 어두운 소설입니다.
루프물.

할리우드에서 2014년 3월 개봉 예정으로 영화화하고 있습니다. 톰 크루즈가 주연이라고 합니다.

분명 암울한 미래전쟁물이고 유혈이 낭자한 이야기인데,
주인공 키리야 케이지가 본시 소년에 가까운―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원입대한 뒤 이제 막 훈련소를 나온 초년병― 평범한 남자였다는 점. 여기에 Boy meets Girl 클리셰가 더해져서 이상할 정도로 라이트한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기동 재킷에 대한 비중이 높은데, 이것이 썩 개성적이지는 않은 소재다 보니 가볍게 읽혀졌는지도 모르겠어요.
기타이의 정체와 루프의 원인에 대해서는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25쪽, 74쪽의 내용이나 두통 등의 이야기가 복선이었더군요.



“군대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생사가 걸린 아슬아슬한 상황이 아니면 살아 있는 느낌이 안 드는 정키, 그것밖에 먹고 살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군인 노릇을 하는 놈, 그리고 발이 미끄러져서 다리 위에서 군대로 떨어져 버린 놈.”
“저는 제일 마지막 패턴이군요.”
“그래, 그런 줄 알았다.”
(p.88, All You Need Is Kill, 사쿠라자카 히로시 지음, 김용빈 옮김, 학산문화사, 2004, 2007)




케이지가 처음으로 출격하는 날, 아군은 기타이에게 괴멸당하고 본인도 배를 꿰뚫려 전사하고 맙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출격 전날이라 하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데다 다시 끔찍하게 기타이에게 죽음을 맞이하지 뭡니까. 전장에서 죽지 않더라도 다음날로 넘어가지 못하고 주인공은 그렇게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틀을 반복합니다.

그 안에 전장의 암캐라고 불리는 특수부대 정예병사 리타 브라타스키가 있었습니다.

화려한 붉은 색 도장의 기동 재킷으로 배틀 액스를 휘두르며 거침없이 전쟁터를 질주하는 열아홉 살의 빨간 머리 리타.

케이지는 마음을 다잡고 리타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좇아 자신도 한없이 되풀이되는 훈련과 실전을 통해 관록 있는 킬링 머신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157번째 루프 때, 리타 또한 과거에 죽음의 무한루프를 겪은 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럼, 스포일러를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라이트 노벨 사이즈로―4·6판(B6)이라고 하는가요― 264페이지밖에 안 돼 삽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나중에라도 읽어보실 분들은 이 포스팅을 그냥 넘겨주세요~!







외계괴물 기타이의 정체는 중반쯤에 밝혀지는데요. 그것은 외계지성체가 테라포밍을 위해 앞서 파견한 일종의 토목기계였습니다. 테라포밍이란 원래 지구인이 다른 별을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개량하는 프로젝트를 가리키는데요, 이 소설에서는 거꾸로 적용된 것입니다.

외계생명체에게 비옥한 환경은 지구인에게 몹시 유해한 독극물 같은 환경이었고, 공방을 겪은 끝에 혼자서 진화하는 이 토목기계는 테라포밍에 방해되는 인간을 없애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체적으로 행동한 것이었습니다.

외계지성체의 별은 40광년 너머에 있기 때문에 아직 지구에 도착하지도 않았고, 지구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합니다. 과연 그들이 도착한 뒤에는 어찌될지. 아니, 그러기 전에 인간이 멸망하지는 않을지.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비판을, 허를 찌르는 관점에서, 펼쳐낸 SF 라이트 노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깊게 들어가지 않아서 아쉬울 따름이죠.



사람이 이주하기 쉽다는 것은 생명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의 제멋대로인 사정 때문에 그들의 토지를 빼앗아도 되는 것인가.

발안자는 대답했다.

돌이킬 수 없는 개발 위에 사람의 생명은 성립되는 것이다.
(p.155, All You Need Is Kill, 사쿠라자카 히로시 지음, 김용빈 옮김, 학산문화사, 2004, 2007)




루프는 기타이가 엉뚱한 사고로 테라포밍을 망치지 않기 위해 습득한 기술 중 하나로써 사고가 생기기 이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고를 방지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서버가 되는 기타이를 건든 인간이 정보를 꿈이라는 형태로 덩달아 옆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기타이 몇 대를 동시에 파괴하면 무한루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그 마지막 회차에서 일으키고 벌어진 일들이 현실로 확정됩니다.

케이지가 이것을 배운 뒤로도 완전한 결말까지 한 가지 더 리타가 가르치는 일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책으로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흑흑, 되게 서글픕니다. 안 그래도 상황이 암울해죽겠는데, 캐릭터 개개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울적해버리다니!

이 점을 염두에 두고라도 포화 속의 Boy meets Girl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신다고 한다면 그럭저럭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프라는 꿈보다도 더 꿈결 같은 연애담이 독자에게 곰팡이 핀 커피를 함께 호르륵거리게 하는 여운을 줍니다. 작가, 나빴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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