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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언제 찍은 사진인지도 모르겠어요. 십년까지는 안 됐을 것 같지만, 여하간 아주 오랜 옛날에 찍은 사진이에요.
서울에서 외곽으로 살짝 나가보면, 이삿짐 보관이라든가 고철상, 헌옷상, 지입차 등의 컨테이너 사무실들이 많이 모여 있는 구역들이 있잖아요? 저희 아버지도 옛날에 그런 곳에서 창고를 쓰셨었어요. 가끔 놀러갔었죠.
개들이 참 많았어요.
여러 컨테이너 사무실들에서 자갈밭 한지에 내버리다시피 풀어놓고 키우는 개들이 많았죠. 창고에 놀러가면 처음 하는 일이 이끼 낀 물그릇을 휘휘 씻어서 새 물을 떠다주는 거였어요. 그렇다고 거기 사는 개들이 불쌍하지는 않았습니다. 드넓은 한지를 무리지어 우르르 뛰어노는 게 행복해 보였거든요. 물이야 뭐 알아서 잘 먹고 다니는 것 같았고, 더욱이 그렇게 사니까 성격이 좋아지더라구요.
(그냥 제 마음대로 불렀던 이름) 점박이와 흰둥이.
어느 날 갔더니 철망으로 된 개 우리가 만들어져 있었어요. “와, 개다~!”하고 가서 보니, 흰 개가 묶여있었는데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던지 좀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만 새로 떠서 스윽 밀어주고 말았죠.
그로부터 또 한참 나중에 아버지 따라 놀러갔는데 철망우리 안의 개가 사라져있더군요. 아아… 그런가보다 했더니만 불쑥 나타난 것이 저 흰둥이.
표정이 엄청 밝아진데다 저의 쓰다듬는 손길을 아주 즐기는 개가 되어있었어요. 허허헉. 그렇구나, 드넓은 땅에서 뛰놀며 사는 것이 성격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얘한테 식빵이나 건빵을 주면 자갈밭 구석에서 하도 물고 빨아 새하얗게 말라붙은 족발 뼈를 물고 와서 저나 어머니 발치에 내려놓곤 했습니다. 빵 말고 고기 달라는 거죠. 상습범이었습니다…. 아마 이 흰둥이의 주인 아저씨네가 족발을 자주 주었던가 봐요.
어느 날, 창고 근방을 산책하다가 모 컨테이너 사무실 문 앞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 발견!
속으로 꺅꺅 소릴 지르면서 조심조심 다가갔죠. 노랑둥이는 딱히 경계하는 낌새도 없이 제게 허물없이 대해주었습니다.
참 친절한 고양이였어요. 제 인생 첫 야옹이(와의 스킨쉽이)라고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이때는 아직 집근처에 고양이카페 같은 것도 없었던 때라)
노랑둥이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의 사장님은 컨테이너 안에서 시쭈를 여러 마리 애지중지 기르는 분이었습니다. 노랑둥이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던 것 같은데, 그래도 사무실 바로 앞에 터를 잡은 생명이니 개 사료 같은 걸 나눠주셨던 것 같습니다. 타우린 결핍이 걱정된 저는 몇 번 북어포를 가져가 컨테이너 옆 물바가지에 푹 적셔서 노랑둥이에게 진상하고는 했는데, 어느 날 그 모습을 문을 벌컥 열고 나오는 사장님한테 딱 걸렸어요. 큭큭. 깜짝 놀란 저는 그 길로 후다닥 도망을 쳤고, 훗날 다시 놀러왔다가 문 앞에 멸치가 잔뜩 뿌려져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킥킥킥.
흰둥이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내 인생에 레어한 야옹이~ 야옹이~ 야옹이~” 노래를 부르면서 노랑둥이를 찾아가면 흰둥이가 거기까지 따라와서 훼방을 놓았어요. 이 자유로운 영혼 같으니라구. 난 노랑둥이를 쓰다듬고 싶은데!!! 노랑둥이랑 놀고 싶은데!!!
흰둥이는 노랑둥이 말고 자기를 쓰다듬으라고 가운데로 불쑥 들어와서는 제 발치에 온몸을 비비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덩치도 커서 힘도 장난 아니었구요. 크흡!
그런데 보통 애묘인들이 “노랑둥이는 진리이다”라고들 말하잖아요?
와… 이 노랑둥이는 흰둥이한테도 친절했습니다. 자기가 먼저 쫑쫑 다가가더니, 저렇게 흰둥이 앞에 탈싹! 하고 드러눕더라구요.
오히려 흰둥이가 “뭐지? 뭐지?” 하면서 쩔쩔매더군요.
(계속 제 주변을 맴도는 흰둥이. 주변을 얼쩡거리는 생명체에게 자비로운 노랑둥이.)
그렇구나. 노랑둥이는 진리로구나. 실로 모든 생명체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야옹이였습니다.
반길냥이였고 옛날 일이었으니 지금은 아무래도 자기네 고양이별로 돌아갔을 확률이 높겠죠. 그곳에서도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게 잘 살고 있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