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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선 진실이 첫 희생자이다 - 아이스킬로스"

!!! 아래로 스포일러 있습니다 !!! 

드론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잉글랜드, 케냐, 미국이 공조하는 테러 조직 생포작전이 사살작전으로 변경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의 국적은 UK와 South Africa.)

시각적으로 눈에 띄게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구요. 그러므로 잔인함 때문에 전쟁영화를 기피하던 관객이더라도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과연 브렉시트를 이룩해낸 영국 정치인들 같으니!"하고 울화가 쌓이는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영화임을 적어두고 싶습니다. (전 브렉시트가 통과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당연히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날 테고 그럼에도 EU는 계속 고생 좀 할 테지 정도로 국제뉴스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과거 미화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영국은 역시 정이 안 가는 나라라는 것 또한 다시 한 번.) (* 아! 이 영화는 브렉시트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의 절반은 그리 크지 않은 방에서 스크린 켜놓고 군인과 정치인이 언쟁을 펼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현대의 전쟁은 고려할 것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짧은 동영상 포스팅이 혁명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정치인의 우려. 그래서 폭탄 두르고 있는 테러범을 눈앞에 두고도 피해추정치를 숫자놀음해야 하고 법적, 정치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정치놀음해야 한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미래의 일을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지금 한 명의 목숨과 향후 몇 십 명의 목숨을 우리 중 그 누가 감히 저울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향 보고"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뒷목 잡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든 이 영화의 각본가는 정말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실소를 넘어선 폭소가 여러 차례 터져 나오더라구요. (특히 제 뒤쪽 남자관객은 너무 크게 자주 웃더군요.) "진짜 비겁하네!" 이 대사 나올 때는 기절해버리고 싶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돼요. 내가 빵 파는 소녀라면? 내가 소녀의 부모라면?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장통을 지나다니는 케냐 사람이라면? 내가 댄포드를 6년이나 추격한 영국 대령이라면? 내가 지금까지 정찰밖에 경험 못해본 미국 드론조종사라면? (그것도 휴머니즘에 넘치는.) 내가 군인과 정치인의 의견차를 조율해야 하는 군인 입장이라면? 내가 법률 자문이라면? 내가 정치인이라면?
각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혼란함에 빠져듭니다. 전쟁이라는 것에 승자는 없음을 다시 한 번 배우게 됩니다.
영화의 결말 너머 저편에서 또다시 테러시도가 되풀이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결말이기 때문에 더더욱요. 우리 사는 이 세상에 무조건 옳다 그르다할 네편 내편은 없으며 내가 휘두르는 손이 절대적 정의의 손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고 피해결과는 단순 수치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이 영화는 속삭여줍니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전쟁영화로서 규모가 작은 듯하나 좋은 전쟁영화들이 갖는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은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랭크 벤슨 장군(앨런 릭먼 분) "허가하시겠습니까, 장관님?"
프랭크 벤슨 장군 "절대 군인에게 전쟁의 대가를 모른단 말은 하지 마십시오 (Never tell a soldier that he does not know the cost of war.)"
위 대사 외에도 전쟁터에 들어간 장군을 집으로 돌아오도록 해주는 매개체가 에나벨 인형이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는 것을 메모해둡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전쟁의 희생자를 생각하면 잔인한 모순에 할말을 잃게 돼요.
이 영화는 앨런 릭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화라는 것 같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뒤로는 더빙작인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있습니다.)

영화전단지의 뒷면 내용이 꽤 읽을 만합니다.
엉뚱한 정보나 과장된 광고 없이 영화에 대해서 깨알같이 잘 홍보해놓은 것 같아요. 앨런 릭먼, 토마토 지수, 콜린 퍼스 등을 언급.

마지막으로,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캐릭터는 바크하드 압디가 연기한 자마 파라 요원이었다는 것을 적어둘게요. 언제 등 뒤로 총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도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취하는 모습이 정말 놀랍고 멋졌어요. 이런 캐릭터가 이 영화를 좀 더 입체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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