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Ariadne의_실타래

[영화] 패신저스

단련 2020. 11. 9. 06:00

패신저스 (Passengers, 2016)

드넓고 어두운 우주. 지구에서 식민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 수송선이 한 대 있다. 모든 인간은 120년 동안 동면에 빠져있어야 하지만, 운석사고로 인해서 동면기 하나가 오작동하여 단 한 사람만이 무려 90년이나 일찍 깨어나게 된다. 남자주인공 짐 프레스턴은 다시 잠들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호화 여객선의 시설을 즐겨보기도 하지만, 점차로 고독에 미쳐간다.

이와 같은 소재라면 수상한 스릴러처럼 연출되거나 먹먹한 독립영화처럼 연출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패신저스』는 이도 저도 아닌 데에 걸쳐져있다. 1억 달러 제작비와 12세 등급(PG-13)이 낳은 미묘한 결과물 같다…….

매우 기이한 Sci-Fi 영화.
동면 캡슐을 싣고 우주를 날아가는, 적막한 거대 호화 우주선’을 그린 비주얼만이 볼거리라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는 무척 이상하다. 동면 캡슐과 호화 우주선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불쾌한 전개와 결말로 끌고 간다. 그리고 너무 작위적이다. 모든 것이 운명적이다. 결말은 ‘다 잘 됐으니까 됐잖아?’하는 느낌으로 급하게 내려버리는 모양새라 어리둥절해지기까지 한다.

!!! 강 스포일러 주의 !!! 
!!! 강 스포일러 주의 !!! 
!!! 강 스포일러 주의 !!! 
!!! 강 스포일러 주의 !!! 
!!! 강 스포일러 주의 !!! 


일단 SF라는 장르의 영화에서 홈스테드사가 동면기 고장은 절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우긴다는 점이 답답하다. 관련 대사가 지나칠 정도로 여러 번 나온다. 고작 30년 만에 깨어나서 꼼짝없이 90년을 혼자 살게 생겼는데 해결책은 전혀 없노라고 제작진은 우긴다. SF에서 이런 설정이라니.
그리고 브리지 출입문도 이상하다. 동면기 회로는 그토록 쉽게 고장 나면서 출입문 회로는 왜 고장 낼 수 없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머리 한구석에서 ‘영화 진행돼야하니까 모른 척 넘어가주자, 넘어가주자~.’ 노래를 부르게 되는 각본이다.

짐 프레스턴은 고작 1년 동안 고독에 미쳐 있다가 젊고 아름다우며 미래가 창창할 여성 한 명을 깨워버린다! 심지어 기술자나 해커도 아니고, 그냥 돈 많고 글 마음에 들게 쓰는 작가이다.
(덧붙여 적어두면, 1년이라는 설정도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① 90년 동안 혼자 있어야만 한다는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빨리 미칠 수도 있을 것. ② 아발론호는 필연적으로 몇 년 안에 심각한 오류를 일으킬 것이므로 1년 이상 남자주인공 혼자 버티게 할 수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작가의 존재가 짙게 느껴지는 시나리오라니.)
여자주인공 오로라 레인(제니퍼 로렌스 扮)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짐과 즐겁게 대화하고 데이트하며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러한 내용이 한~~~참을 나온다.
결국 오로라는 (바의 안드로이드) 아서 때문에 진실을 알게 되는데, 짐은 용서를 구하기보다 변명을 늘어놓느라 바쁘다. 또 그 변명을 (아직 제 멘탈 잡지 못한) 오로라에게 강제로 들려준다. 뭐 이렇게 이기적이고 소름끼치는 남자주인공이 다 있담 싶다. 순전히 외모가 크리스 프랫이고 ‘재난 SF의 기술자’라서 봐주게 되는 캐릭터일 뿐이다.
나중에 깨어난 거스도 딱히 오로라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 황당하다. (짐 편을 들어주지도 않지만.)
시나리오 작가🔗가 분명 남자겠구만 하고 찾아보았더니, 과연 그랬다. 심지어 『프로메테우스』와 『닥터 스트레인지』도 썼길래 피식 웃고 말았다.

어쨌든 『패신저스』는 첫 사고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생명 유지 장치, 원자로, 이온 엔진 등의 필수 시스템이 다운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라서 기술자인 짐은 목숨을 걸고 아발론호를 진정시켜 5천여 명의 생명을 살리고(그런데 IMDb에 의하면🔗 초반 각본은 아주 그냥 답이 없었다;;;) 오로라의 사랑을 얻는 영웅이 된다. ‘짐이 안 깨웠으면 그대로 죽을 뻔했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자. 자, 빨리 넘어가자.’라니 뭐 이런 시나리오가 다 있담 싶다. 게다가 이때 나오는 환기 장면이나 심폐소생 장면 등이 상당히 이상해보여서 SF 영화로서의 별점을 깎을 수밖에 없는 느낌. 과학과 의학에 무지한 내가 봐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어진다. 어느 정도는 그럴싸해보여야지! 하이라이트가 이럴 거면 승무원 258명, 바 서비스 모델 매뉴얼 같은 깨알 설정은 왜 넣었나 싶어질 정도이다.

짐은 영화 결말부에 가서 오토닥(의료기기)으로 동면기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오로라에게 간접적인 용서를 구한다. 오로라는 공허하고 불확실한 미래보다 작가로서 다시없을 엄청난 경험을 한데다 삶의 가치와 사랑을 깨달은 현재를 고른다. 하지만 관객으로선 흔들다리 효과랑 스톡홀름 증후군이 합쳐진 뭐 그런 건가 싶어서 이 급작스러운 결말이 당황스러울 뿐. 여보세요, 그거 다 도파민이랑 세로토닌, 옥시토신의 농간이야! ……아마도! 나는 오로라가 급박한 상황에 떠밀려 너무 빨리 쉽게 짐을 용서했다고 생각한다. 애증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 은원은 서로 목숨을 구한 것으로 갚았고, 나머지는 얼굴과 몸 때문에 봐준다든지 하는 센 대사라도 나왔으면 피식 웃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SF 파트도 로맨스 파트도 대충대충 얼렁뚱땅 넘어간다.

넷플릭스🔗에 다시 올라와있길래 몇 년 만에 재감상한 것이었는데, 흐으으~~~음, 아무리 SF 영화가 고파질지라도 이 영화를 또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영화를 볼 때마다 점점 감상이 나빠져 가기에.

본 글에 인용된 이미지 및 텍스트 등에 대한 모든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가 소유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Columbia Pictures, LSC Film, Village Roadshow, Wanda 등. 

댓글